회의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데이터는 다 보고 있는데 인사이트가 없어요." 데이터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숫자가 답할 수 있는 질문과 답할 수 없는 질문이 구분되지 않은 채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씩데이터는 그 구분에서 출발하는 개념입니다.
씩데이터의 정의
씩데이터(Thick Data)는 사람들의 실제 경험과 행위에 담긴 맥락과 의미를 설명하는 데이터를 가리킵니다. 두꺼운 데이터라는 이름은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제시한 중층기술(thick description) 개념에서 왔습니다.
기어츠는 한쪽 눈을 깜빡이는 행동을 예로 들었습니다. 눈꺼풀이 움직였다는 사실만 기록하면 얇은 기술입니다. 그것이 눈에 티가 들어간 것인지, 신호를 보낸 것인지, 누군가를 흉내 낸 것인지까지 담아야 두꺼운 기술이 됩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비즈니스에 옮기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빅데이터는 소비자가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 보여주고, 씩데이터는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왜 벌어졌는지를 알려 줍니다.
숫자가 멈추는 지점
로그 데이터는 정확합니다. 어떤 화면에서 이탈했는지, 어떤 상품이 함께 담겼는지, 어느 요일에 구매가 몰리는지를 오차 없이 보여줍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왜 그 화면에서 멈췄는지, 왜 하필 그 조합이었는지는 로그에 남지 않습니다. 이유는 사람의 맥락 안에 있고, 맥락은 기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공백을 데이터로 메우려고 표본을 늘리면 패턴은 선명해지지만 이유는 여전히 나오지 않습니다. 관측을 아무리 늘려도 관측되지 않는 변수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래를 예측할 힌트는 언제나 '무엇'이 아닌 '왜'에 있습니다. 넷플릭스, 아디다스, 레고 같은 기업들이 관찰에 투자하는 이유입니다.
관찰은 어디서 시작되나
씩데이터를 얻는 방법은 설문지에 답을 받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자기 행동의 이유를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물어보면 사후에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장에 들어가 그 사람의 하루를 따라가는 방식을 씁니다. 부엌에서, 출근길에서, 매장 앞에서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그냥 지나치는지 봅니다. 이때 나오는 것은 통계가 아니라 문장입니다. "귀찮아서 그냥 늘 쓰던 걸 샀어요" 같은 한 줄이 대시보드 여러 개보다 많은 것을 설명할 때가 있습니다.
깊숙이 앉는다는 것
짧은 방문으로는 사람들이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관찰자가 풍경의 일부가 될 만큼 머물러야 자연스러운 행동이 나옵니다. 인류학에서 참여관찰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며, 시간이 든다는 점이 가장 큰 제약입니다.
모든 과제에 이 방식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원인이 분명한 문제라면 관찰은 과잉입니다. 숫자로 원인을 좁히지 못하고 가설이 계속 헛도는 문제에 쓰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씩데이터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여기서 자주 생기는 오해를 짚어야 합니다. 관찰이 빅데이터를 대체한다는 주장은 씩데이터의 취지가 아닙니다. 관찰만으로 끝나면 그것은 몇 사람의 일화에 그치기 쉽습니다.
관찰에서 나온 가설이 실제로 다수의 소비자 행동에서 나타나는지는 데이터로 확인해야 합니다. 인원이 적다는 것이 씩데이터의 구조적 한계이고, 깊이가 얕다는 것이 빅데이터의 구조적 한계입니다. 두 축이 겹치는 지점에서 실제 의사결정에 쓸 수 있는 인사이트가 나옵니다.
순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관찰로 가설을 만들고, 데이터로 검증하고, 검증된 가설을 다시 현장에서 확인합니다. 한 바퀴로 끝나지 않고 반복될수록 정확해집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전면적인 조사를 설계하기 전에 작게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가장 설명이 안 되는 숫자를 하나 고르고, 그 행동을 한 고객 다섯 명 정도를 직접 만나 보는 것으로도 출발점이 됩니다.
이때 인터뷰를 조사팀에만 맡기지 않고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직접 듣는 편이 좋습니다. 요약된 보고서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맥락이 가장 많이 깎여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방식을 실제 매출 과제에 6개월 동안 적용하면서 내부 인재가 함께 익히도록 설계한 프로그램이 씩데이터 IX 워룸입니다. 관련해 조직 안에서 누가 이 역할을 맡게 되는지는 AI 시대 인재상 글에서 다뤘습니다.
관찰에서 무엇을 봐야 하나
현장에 나가더라도 무엇을 볼지 정하지 않으면 인상만 남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쓰이는 관찰 지점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망설임입니다. 사람이 손을 뻗었다가 멈추는 순간, 화면을 열었다가 닫는 순간에는 대개 갈등이 있습니다.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고민했는지가 구매 결정의 핵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은 우회입니다. 제공된 방식을 쓰지 않고 자기 나름의 방법을 만들어 쓰고 있다면, 그 지점에 설계와 실제 사용의 간극이 있습니다. 사용자가 직접 만든 임시방편은 개선 아이디어의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세 번째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입니다. 중요하다고 답한 항목이 실제 행동에서는 우선순위가 아닌 경우가 흔합니다. 이 불일치 자체가 중요한 정보입니다.
마지막은 주변 사람입니다. 결정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구매자 본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 동료, 온라인에서 본 후기 중 무엇이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록하는 방식
관찰 결과는 요약하는 순간 맥락이 빠집니다. 그래서 현장 노트는 해석을 섞지 않고 본 것과 들은 것을 그대로 적고, 해석은 따로 표시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나중에 가설이 틀렸을 때 원본으로 돌아가 다시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쌓인 노트는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회사에 남는 자산이 됩니다. 다음 과제에서 같은 고객군을 다룰 때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주 생기는 오해 두 가지
첫 번째 오해는 씩데이터가 규모가 큰 회사만의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자원이 적을수록 잘못된 방향에 투입하는 비용이 치명적이므로, 소수라도 직접 만나 보는 편이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오해는 한 번의 조사로 답이 나온다는 기대입니다. 관찰에서 나오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가설이며, 검증과 재관찰을 몇 바퀴 돌아야 확신이 생깁니다. 처음부터 완결된 답을 기대하면 중간에 실망하기 쉽습니다.
두 축을 함께 쓰는 조직을 만드는 방법은 기업 혁신 프로그램 고르는 법에서 형태별로 비교해 두었습니다.
참고: Clifford Geertz,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1973) · Tricia Wang, "The human insights missing from big data"(TED, 2016) · 백영재, 《THICK data 씩 데이터: 빅 데이터도 모르는 인간의 숨은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