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 2026.08.07

부서 간 사일로, "협업하세요"라는 말로는 깨지지 않습니다

조직문화 진단 결과를 받아 든 경영진이 가장 자주 하시는 질문이 있습니다. "협업이 안 된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협업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이미 충분히 나갔습니다. 워크숍도 했고 전사 공지도 띄웠습니다. 그런데도 부서 사이의 벽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습니다.

이 글은 사일로를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놓고, 실제로 벽이 낮아지는 조건이 무엇인지 정리한 것입니다.

사일로는 태도가 아니라 구조에서 생깁니다

사일로를 협조성 부족으로 보면 해법이 "잘해보자" 외에 나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들여다보면 각 부서는 대체로 자기 자리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유입과 인지도로 평가받고, 영업은 이번 분기 매출로 평가받습니다. 운영은 비용과 사고율을, 개발은 안정성과 일정을 지켜야 합니다. 각 부서의 판단은 자기 지표 안에서 보면 전부 옳습니다. 문제는 이 합리성들이 충돌할 때 조정할 자리가 회사 안에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조정할 자리가 없으면 충돌은 개인 간의 감정으로 번역됩니다. "저 부서는 비협조적"이라는 말은 대개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목표를 들고 같은 방에 앉을 이유가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호가 조정 비용을 개인에게 떠넘길 때

"협업하세요"라는 메시지는 선언으로는 명확하지만, 실행 단계에서는 조정에 드는 비용을 실무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권한이 없는 담당자가 타 부서 담당자를 설득해야 하고, 설득에 실패하면 그 책임까지 개인이 지게 됩니다.

이 경험이 몇 차례 반복되면 조직에는 학습된 무력감이 남습니다. 다음 번에는 아예 시도하지 않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협업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시도가 줄어드는 역설이 여기서 생깁니다.

사일로가 실제로 낮아지는 세 가지 조건

여러 조직의 사례를 놓고 보면, 부서 간 벽이 실제로 낮아진 경우에는 공통적으로 세 가지가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만 있으면 대개 원상 복귀합니다.

첫째, 부서 과제가 아닌 회사의 문제

모여야 할 이유가 분명해야 합니다. 부서별로 쪼갠 과제를 각자 들고 오면 회의는 보고의 합이 됩니다. 반면 어느 한 부서 힘으로는 풀 수 없는 회사 단위의 문제를 올려놓으면, 협업은 도덕이 아니라 필요가 됩니다.

이때 가상의 케이스 스터디로는 힘이 붙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고객과 실제 매출이 걸려 있어야 사람들이 자기 판단을 걸고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둘째,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해서 같이 앉는 시간

신뢰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시간의 함수에 가깝습니다. 하루짜리 워크숍에서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져도, 각자 자리로 돌아가 원래의 지표 아래 놓이면 대개 원래 행동으로 돌아갑니다.

같은 사람들이 여러 달에 걸쳐 반복해서 만나야 서로의 제약 조건을 이해하게 됩니다. "저 부서가 안 해주는 것"이 "저 부서는 그 지표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대화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셋째, 논의가 결정으로 이어지는 통로

아무리 좋은 결론이 나와도 실행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으면 그 자리는 소모전이 됩니다. 최종 의사결정권자에게 직접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 실행까지 가는 구조가 처음부터 설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이 통로가 열려 있으면, 참여자들은 자기 시간을 쓸 이유를 갖게 됩니다. 결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참여의 질을 바꿉니다.

대표가 회의에서 "협업하세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일로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경계를 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 함께 앉아 문제를 같이 풀어야 비로소 움직입니다.

내부 조정자만으로는 어려운 이유

많은 회사가 내부에 조정 역할을 맡길 사람을 세웁니다. 필요한 시도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내부 인력은 이미 어느 한 부서에 소속되어 있고, 그 소속은 조정 과정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 조직의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 본 외부 전문가가 촉매 역할을 하면 이 지점이 다소 수월해집니다. 부서 정치에서 한 발 떨어져 있고, 다른 산업에서 비슷한 충돌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사례를 들고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외부 전문가에게만 의존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그 사람이 떠난 뒤 방식도 함께 사라지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외부의 시각이 들어오는 동안 내부 인재가 그 사고방식을 흡수해 스스로 굴릴 수 있게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씩데이터 IX 워룸이 외부 전문가의 참여와 내부 인재 육성을 분리하지 않고 한 프로그램 안에서 함께 진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조직문화는 선언이 아니라 성공 경험으로 바뀝니다

문화를 바꾸는 것은 슬로건이 아니라 "이번에는 실제로 됐다"는 경험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로 다른 부서 사람들이 하나의 문제를 같이 붙들고, 결정까지 가서, 실제로 숫자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경험이 한 번 생기면 그 다음이 달라집니다.

"해도 안 된다"가 "하면 되는구나"로 바뀌는 순간을 함께 통과한 사람들이 조직 안에 남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음 프로젝트에서 같은 방식을 다시 꺼내 쓰고, 주변에 퍼뜨립니다. 문화는 그렇게 확산되는 편입니다.

물론 이 과정이 모든 조직에서 같은 속도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최고경영진의 관심이 중간에 식거나, 참여자가 원래 업무에 치여 시간을 내지 못하면 흐지부지되기도 합니다. 시작 전에 참여자의 업무 조정까지 함께 설계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정리

사일로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조정 구조의 부재에서 생깁니다. 회사 단위의 실제 문제, 반복해서 같이 앉는 시간, 결정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함께 갖춰질 때 벽이 낮아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한 번 통과한 사람들이 남아야 문화가 유지됩니다.

조직 안의 인재가 어떻게 이 역할을 맡게 되는지는 AI 시대 인재상 글에서, 프로그램 형태를 고르는 기준은 기업 혁신 프로그램 고르는 법에서 이어서 다룹니다.

시작하기 전에 점검할 것들

사일로 해체를 목표로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다음 세 가지를 미리 정리해 두면 중간에 멈추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참여자의 업무 부하입니다. 여러 부서에서 가장 일 잘하는 사람을 모으면, 그 사람들은 원래 업무도 가장 많이 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참여 기간 동안 무엇을 덜어 줄지 정하지 않으면 몇 주 만에 출석률이 떨어집니다.

둘째는 경영진의 참여 지점입니다. 전 과정에 함께할 필요는 없지만, 중간 보고와 실행 승인 시점에는 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이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이 일정을 시작 시점에 미리 잡아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셋째는 다룰 문제의 크기입니다. 너무 크면 6개월 안에 결론이 나지 않고, 너무 작으면 여러 부서가 모일 이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한 부서 힘으로는 못 풀지만 회사 전체를 흔들 정도는 아닌, 중간 크기의 문제가 적당한 편입니다.

참고: 백영재, 《경계인: AI 시대, 새로운 인재의 조건》 · Robert E. Park, "Human Migration and the Marginal Man"(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928)

자주 묻는 질문

이런 점이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사일로를 없애려면 조직개편이 먼저인가요?

조직개편은 보고 라인을 바꾸지만, 부서별 지표가 그대로면 같은 충돌이 새 구조 안에서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편보다 먼저 여러 부서가 함께 풀어야 하는 실제 문제를 하나 세우고, 그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서 무엇이 막히는지 확인해 보시는 편을 권합니다.

워크숍이나 팀빌딩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요?

분위기를 여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다만 하루 이틀의 행사는 각자 자리로 돌아간 뒤의 지표를 바꾸지 못합니다. 같은 사람들이 여러 달에 걸쳐 실제 과제를 붙들고 반복해서 만나는 구조가 함께 있어야 효과가 유지되는 편입니다.

어느 정도 기간을 봐야 하나요?

조직 규모와 문제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문제 정의부터 실행과 회고까지 한 바퀴를 도는 데 통상 수개월이 걸립니다. 씩데이터 IX 워룸은 6개월 7단계로 이 사이클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서를 참여시켜야 하나요?

해당 문제의 원인과 실행에 모두 걸쳐 있는 부서를 넣는 것이 좋습니다. 통상 마케팅, 기획, 운영, 개발이나 데이터 조직에서 각 2명 정도씩 참여하는 구성이 많이 쓰입니다. 직급보다는 실제로 일이 돌아가는 것을 아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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